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구려-신라 관계 (문단 편집) === 초반(우호적 관계) === 처음부터 아주 우호적이었던 건 아니었다. 고구려가 3세기 전중반 즈음 동예 및 옥저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강원도 영동 지역에 영향력을 부식해나가고 있던 신라와 사소한 마찰을 빚게 되었기 때문이다. 하지만 고구려가 동천왕 때 비류수 전투에서 위나라에게 대패를 당하면서 강원도 일대 영향력을 잃게 되는 바람에 이 갈등은 뜻하지 않게 종식되었고, 그 동안에 고구려, 마한(목지국 및 신분활국 세력), 낙랑-대방군 등이 서로 싸우다 다들 사이좋게 큰 타격을 받고 세력을 잃은 이 시기에 백제가 부쩍부쩍 성장해 그 공백을 메우면서 두 나라의 관계는 우호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. 우선 백제 전성기 때 고구려의 [[고국원왕]]이 전사했기에 고구려와 백제는 최악의 대립 관계였다. 한편 백제가 3~4세기에 삼한 전체의 명목상 수장이었던 목지국을 비롯한 충청도 일대 옛 마한 소국들을 정리해서 직접 지배령화한 후에는, 기리영 전투 이래로 개통된 바 있었던 옛 진한 - 낙랑, 대방군 무역 경로가 다시 막혀버린 상황이었기에 신라와 백제 또한 대단히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. 그러니 신라와 고구려는 다툴 이유는 전혀 없을뿐더러 사이좋게 지낼 이유가 많아지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